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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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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세공 댓글 0건 조회 3,831회 작성일 11-11-1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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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지혜
어느 날 두 여자가 솔로몬왕 앞에 와 다투었습니다. 두 여자가 거의 동시에 아이를 낳았는데, 사흘째 밤에 한 아이가 죽었습니다. 죽은 아이를 둔 여자는 다른 여자의 산 아이와 죽은 아이를 바꿔치기 했고, 그로 인해 분쟁이 생겨났습니다. 그 분쟁은 결국 왕에게까지 왔습니다. 솔로몬은 "살아 있는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쪽은 이 여자에게 나머지 반쪽은 저 여자에게 주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생모는 마음이 불붙는 듯하여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어도 좋으니, 제발 죽이지는 말아주십시오"하고 애원하였습니다. 다른 여자는 "어차피 내 아이도 네 아이도 안될 테니 차라리 나누어 가지자"고 말하였습니다. 드디어 왕은 "살아 있는 아이를 죽이지 말고, 아이를 양보한 여자에게 주어라"고 판결했습니다. 백성들은 왕이 내린 판결을 전해 듣고는 그 현명함에 두려워하였다고 합니다.
솔로몬의 현명함은 성경 여기저기서 보여집니다. 우선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 신이 무엇을 원하는가 물어오자 지혜로운 마음을 줄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백성들의 많은 송사를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였기 때문입니다. 장수와 부귀영화, 큰 권세를 꿈꾸지 않고 백성을 현명하게 다스리기에 골몰하는 모습, 그리고 백성을 잘 다스리기 위해 분쟁의 처리에 있어 높은 지혜가 필요함을 솔로몬은 알았습니다. 정적을 거꾸러뜨리는 술수와 권력을 구하지 않고, 백성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구한 점에서 솔로몬은 오늘날까지 훌륭한 지도자의 모범이 될 수 있습니다.
또 놀라운 것은 이 사건의 원고와 피고 모두 최하층 창녀의 신분이라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솔로몬은 그들의 이야기를 남김없이 듣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고압적.권위적 심문방법이나 재판진행이 오늘 우리 사회에서도 문제되고 있는데, 먼 고대의 지존한 국왕이 최하층 여자들의 분쟁에 깊이 귀를 기울이는 모습은 아름다운 정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14세기 중국설화는 다른 방법이 가능함을 보여줍니다. 유사한 사건에서 재판관인 관리는 분필로 원을 그린 다음 아이의 양손을 두 여자가 나누어 잡게 하고는 아이를 빨리 원 밖으로 끌어내는 쪽이 아이의 임자라고 말합니다. 한 여자는 아이를 힘껏 잡아당기고, 다른 여자는 당기다 놓아버립니다. 몇 번을 반복해도 결과는 같았습니다. 이 쟁탈전에서 앞의 여자는 아이를 차지하는 데 관심이 있고, 뒤의 여자는 아이의 안녕에 관심이 있습니다. 누가 진짜 엄마인지는 불문가지입니다.)
성경에서는 솔로몬의 재판을 보고 백성들이 두려워하였다고 쓰여 있지, 그러한 지혜를 갖춘 솔로몬을 참으로 존경하고 사랑하였다고 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상대방의 아픔에 공감하고 상대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마음가짐이 바탕에 없으면, 상대방으로부터 두려움의 대상은 될지 몰라도 존경과 사랑을 얻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솔로몬의 재판과 하나님의 심판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솔로몬은 진실을 밝혀내어 엄정한 정의를 집행하였습니다. 대신 승/패를 명확히 가름으로써 패자에게 고통을 더하였고, 승자에게도 잠재적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는 니느웨 백성과 국왕의 구원, 그리고 요나의 구원이었습니다. 모든 등장인물들은 하나님의 개입으로 인해 이전보다 쇄신된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결정적인 전제는 하나님의 경고에 대하여 귀를 기울이고, 그 재앙을 막기 위해 모두가 말과 행동으로 참회하며, 그 참회는 모든 생명체에까지 확장되는 것입니다. "노하기는 더디 하시고 인애하심은 한량없는 하나님"의 참뜻은 승패를 명확히 가르는 냉혹한 정의보다는 하나님과 사람,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람과 육축간의 올바른 관계 회복을 통한 평화에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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