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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메니아의글 (조용헌살롱:조선일보 3월4일:익산중앙클럽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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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재성 댓글 0건 조회 4,287회 작성일 12-03-07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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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빵게 右꽃게

 

동양의 방위관념에서는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바라보게 되어 있다. 그래서 동쪽은 좌에 해당하고, 서쪽은 우에 해당한다. 한반도의 동해안과 서해안은 조류의 흐름도 다르고, 수심과 바람도 다르고, 뻘밭도 다르고, 어종(魚種)도 다르다. 풍토가 다르니까 맛도 다른 것이다. 예를 들면 동해안의 게(蟹)와 서해안의 게가 확연히 다르다. 동해안의 게가 영덕 일대에서 나오는 대게라면 서해안은 꽃게인 것이다. 영덕대게 중에서 암게를 '빵게'라고 부른다. 지금은 이 '빵게'가 보호어종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잡을 수 없게 되어 있다. 빵게를 잡으면 구속된다.

서해안의 꽃게 맛만 알았던 필자가 빵게 맛을 처음 본 것은 10년 전쯤에 대구의 약전골목에서였다. 그때는 물론 빵게 잡는 일이 불법이 아니었던 시절이었다. 이 골목에는 유명한 칼국수 집이 하나 있었는데, 빵게를 같이 넣고 끓인 칼국수였다. 그 맛이 감동적이었다. 한마디로 서해안 사람이 맛보지 못했던 시원한 맛이었다. 이어서 대구 칠성시장에 가보니까 좌판에서 빵게를 팔고 있었다. 일년 중에 2~3월이 산란기의 빵게 철이다. 알이 차 있는 빵게를 쪄서 먹었는데,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나왔다.

담백하면 고소하기가 어렵다. 고소하면 기름지기 쉽다. 그런데 빵게는 이미접합(異味接合)이었다. 왜 중국의 소동파가 게를 좋아했는지 알 것 같았다. 중국은 상하이 근처의 민물 호수에서 나오는 '다자셰(大閘蟹)'라는 게가 고가의 미식(美食)으로 유명하지만, 내가 보기에 빵게가 다자셰보다 한 수 위다. 2~3월에 빵빵하게 알이 찬 빵게는 동해안 최고의 맛이다.

그런가 하면 꽃게는 간장에 담가서 먹는 '꽃게장'이 일품이다. 말기 암환자도 마지막까지 먹고 싶은 음식이 꽃게장이라고 들었다. 필자는 일본에서 장년층의 손님이 오면 꽃게장 집에 데려가곤 했는데, "어떻게 한국요리에서 이런 맛이 나오느냐"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빵게는 담백하게 쪄서 먹어야지 게장(醬)으로 만들기는 적합하지 않다. 반면에 꽃게는 양념을 해서 무침도 해먹지만, 간장에 발효시켜서 먹으면 더 깊은맛이 난다. '좌빵게'와 '우꽃게'를 보면 동쪽과 서쪽이 요리재료도 다르고, 조리법도 다르고, 음식 취향도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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